Where Was The First Lesbian Bar in South Korea?

In the section below, I’ve transcribed and annotated a 1999 article from Buddy, one of South Korea’s earliest LGBT magazine, that questions Lesbos’s claim of being South Korea’s first lesbian bar.

한국 최초의 레즈비언 바는 레스보스가 아니었다

마감 때 걸려온 놀라운 독자 제보

편집 마감으로 휴일 야간작업을 하고 있던 버디 사무실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기사에 오보가 나갔다는 어느 독자 분의 지적이었고 우리는 그 지적이 다름아닌 ‘한국 최초의 레즈비언 바는 레스보스가 아니다’ 라는 점에 깜짝 놀랐다. 단 한번도 의심치 않았던 최초의 레즈비언 바가 〈레스보스〉가 아니라면 대체 어디란 말인가! Lesbos was a Korean lesbian bar located in Sinchon, Seoul. It opened in May 1996 and closed in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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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제보에 따라 편집팀은 모여서 96년도의 이미 빛바랜 기억의 조각들을 끼워맞추어 보기 시작했고 그 당시, 레스보스와 거의 같은 시기에 대전에도 레즈비언 바가 하나 있었으며 그 광고가 〈끼리끼리〉에서 발간된 레즈비언 잡지 〈또다른세상〉 에 실렸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According to the 2000 South Korean census, Daejeon was the fifth most populous city in the country, following Seoul, Busan, Daegu, and Incheon (in descending order).

96년 봄에 나온 〈또다른세상〉 창간호 (발행일이 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96년 3월로 추정된다)를 살펴보니, ‘레즈비언 전용 까페’ 라는 타이틀을 달고 두 여자가 서로 마주 보고 서 있는 사진을 배경으로 한 〈레떼〉광고가 실려있었다. 그리고 같은 잡지에 〈레스보스〉광고는 5월 오픈 예정으로 광고가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레떼〉가 〈레스보스〉보다 먼저 개업했음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된 사연으로 〈레떼〉는 사람들과 역사의 기억 뒷편으로 사라져버리고 〈레스보스〉가 최초라는 명함을 달게 된 것일까?

편집팀은 〈레떼〉 사장님과 통화를 시도해 보려 했으나 그 분의 연락처는 알아 낼 수 없었고 대신 사장님의 오빠되시는 분과 통화를 하게 되었다. 〈레떼〉는 원래 그 자리에서 〈백조의호수〉라는 이름으로 게이바를 운영하고 있던 오빠가 동생에게 사업을 해 보라고 넘겨주고 여동생이 물려받아 레즈비언 전용 까페를 만들었던 것이라고 한다. (오빠는 현재 대전역 근처에서 역시 게에바인 〈동경클럽〉을 경영하고 있다)

〈백조의호수〉가 게이바였다고는 하지만 달리 갈 곳이 없었던 레즈비언들도 심심찮게 가게를 드나들고 있었기 때문에 이 참에 레즈비언들만의 공간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 〈레떼〉 사장님의 생각이었고 마침내 96년 3월 가게를 오픈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장님이나 그 주위 사람들이나 ‘우리나라 최초의 레즈비언 바’ 라는 타이틀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문을 연 〈레떼〉는 여상과는 달리 영업이 잘 되지 않아 가게 운영에 어려움을 많이 겪었고 1년쯤 버티다 97년 초에 문을 닫았다고 한다. (하지만, 96년 말부터 문을 열지 않는 날이 많았던 듯 하다. 정확한 폐업시기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어 96년 말인지, 97년 초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서울 중심의 역사관-동성애 역사의 한계

96년 5월에 마포에서 첫 문을 열은 〈레스보스〉보다 대전의 〈레떼〉가 두 달여 정도 앞서 오픈했던 것이 밝혀짐에 따라 ‘한국 최초의 레즈비언 바’ 라는 타이틀이 〈레스보스〉의 몫이 아님을 확실해 졌다. 그렇다고 여기서 무작정 대전의 〈레떼〉가 최초였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처럼 다른 동성애 잡지나 소식지에 광고를 내지 않았을 뿐이지 레즈비언 전용으로 문을 연 곳이 또 있을 지 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버디 편집팀은 이번 일을 계기로 해서 동성애 역사를 정리하는 일에 다시 한번 근본적인 한계와 부족함을 느꼈다.

우리가 신중하게 반성해 봐야 할 것은 선 서울 중심의 역사관이다. 〈레떼〉는 두 달이나 앞서 오픈을 해 1년 정도의 생명을 유지했지만 그 존재를 명확히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적어도 서울에서 생활하는 레즈비언이나 레즈비언 활동가들에겐 그러했다. 96년 5월 10일에 있었던 〈레스보스〉의 오픈식 날, 당시 〈끼리끼리〉의 회장이자 까페 〈레스보스〉를 만든 주역 중의 한 사람인 이해솔씨는 개업축사에서 “한국의 첫 레즈비언 전용 까페의 오픈을 알립니다” 라고 말하고 있다. (『레스보스, 그 섬으로의 여행』 중에서 참고) 불과 두 달 전에 자신의 단체에서 발행하는 책에 광 고를 낸 그 까페는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다. The suggestion to reflect upon Seoul-centric tendencies hints at a larger phenomenon of the provincial-cosmopolitan divide.

이것은 비단 이해솔씨만의 잘못은 아니다. 그 누구도 제대로 기억하고 있지 않았던 것은 똑같았고, 또한 서울과 대전의 문화적 교류가 많지 않았던 때 라 (지금도 상황은 마찬가지이지만) 소 식지 등을 통해 열심히 홍보를 하지 않은 〈레떼〉를 기억하기란 쉽지 않을 일이기 때문이다. To understand better how information diffuses through a given network, see Kevin Simler’s interactive article here.

동생이 광고비가 부담스러워서 광고를 잘 하지 못했었다고 회상하고 있는 〈동경클럽〉 사장님의 증언은 서울에 비해 상대적으로 손님이 적을 수밖에 없는 지방 이반업소들의 사정을 반영해 주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런 까닭에 서울 지역 외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묻혀버리기 쉬운 것이다.

〈버디〉역시 그 동안 종로와 이태원 등을 중심으로 한 동성애자들의 발자취를 파헤쳐 보는 작업은 해보지만 서울 외 지역의 동성애자들의 게토를 발견, 검토하거나 동성애 문화의 형성을 살펴볼 기회를 마련하지 못했다. 현재의 〈버디〉 역량으로서는 버거운 일인 탓도 있지만, 이런 일은 우선 그 지방에서 옛날 일을 증언해 줄 자이 많은 이반들의 협조와 꼼꼼히 사건과 여러 증언들을 기록해 둘 수 있는 적극적인 사람이 있어야 가능해질 일이기도 하나 예를 들어 이번과 같이 〈버디〉로 전화를 걸어 기사의 진위를 따져 물은 그 독자분과 같은 도움이 중요한 것이다.

최초라는 것의 의미는

이번 취재를 통해 어쨌든 우리는 잃어버릴 뻔했던 소중한 기억 하나를 건져 올린 셈이다. 그것은 ‘최초’와 ‘두번째’ 라는 문제를 떠나서 희뿌연한 안개에 싸인 듯 턱없이 부족하기만 한 레즈비언의 역사에서 새로운 보물 을 발굴해 낸 듯한 반가움과 인구의 1/4일 모여 사는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먼저 이런 자생적인 노력과 활동이 있었다는 사실에 대한 놀라움이란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몰랐던 것을 알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설레이는 일인가. 이렇게 하나 하나 새로운 사실들이 발굴되어서 우리 나라 전체의 레즈비언 역사와 문화가 정리되어져 나간다면 좋겠다는 바램이 앞서서 자꾸만 일어난다.

〈레떼〉는 다시 개업 준비를 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 이 있다. 아직 구체적인 날짜가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레떼〉의 사장님은 다시 한번 레즈비언의 쉼터로서 제대로 운영해 보고 싶다는 욕심 을 가지고 계신다고 한다. 사실, 96년도 당시에는 대전만의 지역 모임이나 소식지 등도 없고 레즈비언 소식지라고 해야 계간지인 〈또다른세상〉 하나 뿐이였던 시절이라 동성애 관련 사업을 한다고 해도 딱히 홍보를 할 길이 없었다. 더군다나 동성애를 말하는 것이 지금보다 휠씬 더 억압적이었던 사회적 분위기에서 지방 레즈비언바가 성공할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많이 달라졌고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아 나가는 전국의 레즈비언 숫자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레즈비언을 보담아 줄 수 있는 쉼터의 탄생은 무척이나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나라 최초의 레즈비언 전용바로서의 명성을 새롭게 이어갈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또 한가지 〈레스보스〉는 그 동안 동성애자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일반 언론에서도 우리 나라 최초의 레즈비언 바로서 홍보되고 알려져 왔다. 그리고 경영의 어려움 속에서도 4년째 꿋꿋하게 제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비록 ‘최초’라는 타이틀은 단 2개월 차이로 빛을 바래버렸지만 그에 버금가는 명예와 위업을 지금도 쌓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레즈비언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대표적 레즈비언 바로서의 자긍심을 계속 이어가는 것 또한 어떤 의미에서는 “최초”의 의미를 살려내는 것이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